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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날

작성자
김원웅
작성일
2022-06-17 16:09:09
조회
29
나에게 그날
 
학교는
휴교령이 내렸다.
 
유리창 없는
광주에서 목포로 내려온
금호 고속버스 3대
 
이마엔 띠를 매었다.
손에든 몽둥이론
버스 옆면을 두드리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계엄령 해제하라
김대중 석방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들려온 참혹한 소문
계엄군 대검에
임산부 배가 갈렸다.
여고생의 유방이 잘렸다.
길바닥에 피가 흥건...

떨렸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교련복을 입고
200여 명이 학교에 모였다.
 
스크럼을 짰다.
용당동에서
산정동으로
만호동에서
역전으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민주일정 발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계엄령 해제하라.
 
카빈 소총이
트럭에 가득 실렸다.
모든 파출소는
문을 걸어 잠갔다.

친구 영미는
역전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국 성토를 했다.
 
카빈으로 무장한 차는
총을 쏘며
시내를 순회했다.
 
빵을 나누었다.
음료수를 나누었다.
밥을 내왔다.
 
그렇게 5, 6일이 흘렀다.
하늘에선 헬기가
삐라를 뿌렸다.
“자중하라”
 
27일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 사수하던
도청은 무덤이 된 체
열흘간 시위는 끝났다.
 
그리고 체육관 선거를 통해
물러가기를 그렇게 외쳤던
광주 학살자가
11대 대통령 선서를 했다.
가슴을 쳤다.
 
그리고 20대
독재 타도 민주 쟁취
투쟁하며
최루탄 가스를 원없이 마셨다.
 
42년이 흘러
이제 환갑이 되었다.
강산이 4번 바뀌었는데도
눈물이 난다.
그날을 생각하면
 
기도한다.
내 예쁜
손녀들에게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518은 아픔이며 자랑입니다.
518은 군사 쿠테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세력에 대한 저항이며
피로써 이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온 씨앗입니다.
518은 한 번만으로 끝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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